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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논평

경제학도의 영화읽기 ① - 기생충 (스포있음)

by 자유시각 2020. 2. 17.


 최근 재개봉한 영화 <기생충>을 보게됐다. 영화 자체는 부자를 악인으로 묘사하거나 가난한 사람을 정의로운 영웅으로 묘사하는 그런 전형적인, 억지스러운 감성팔이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굉장히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들은 이 영화를 계급투쟁에 빗대면서 예전부터 팔아왔던 싸구려 감성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평가하는 걸 보고 소 귀에 경 읽기속담이 문득 떠오른다. 그런 철지난 계급담론을 언제까지 들어야 할는지..?


 

기생충의 영화적 시점

 필자는 기생충에서 보여주는 사회의 어두운면을 보기보다는, 박사장의 회사에서 벌어지는 창조적 고뇌, 고찰이 사회 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꾸는 데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쉽게 말하자면, 박 사장은 극중 '스티브 잡스'같은 혁신적인 사업가임이 분명하다. 반면 기택의 가족들은 혁신을 일으키기보다는, 그저 박 사장의 가정적인 영역에 한정된 채 기생해야 되는 존재들이다. 그들의 능력을 발휘되는 곳은 박사장이 일을 떠난, ‘’, ''라는 지극히 개인적 공간이다. 그러니 사회 전반의 문제를 비판하는 영화로서 그려낸다기보단 '작은 사회', '협소한 인간관계'의 시점을 다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환경이다보니 영화를 보며 은연적으로 느끼기에 부자집은 맨날 캠핑가고 파티열고 놀기만하는데 가난한 집은 부잣집에 기생하면서 쎄빠지게 일한다.‘는 식의 부당함을 느끼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그런 영화적 장치가 기생충으로서의 관점을 잘 보여줄테니까.

 

박 사장 인물의 의의

 박 사장이 영화에 등장하는 시간은 기껏해야 출퇴근, 기택이 운전기사로 갔을 때 일하는 장면 잠깐, 집에서 거사(!) 치르는 장면 정도이다. 애당초 영화 자체는 기생충의 모습을 담기 위해 그저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숙주역할로서 박 사장이라는 인물,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재력이 필요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숙주박 사장의 평소 회사일에 대한 고찰, 그로 인한 스트레스 등에는 조명을 비추지 않는다. 현실에서 박 사장의 인생은 회사 일에 거의 모든 것을 쏟게 될테지만.

 

그럼 박사장 가족들은?

 사실 이러한 편협한 시점은 박사장 뿐만 아니라 박사장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스토리를 주도하는 건 기택의 가족이지, 박 사장네는 그저 주인공 가족이 이끌어가는 대로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 사회에서는 그 반대의 경우가 주를 이룰텐데 말이다. (이러한 전개의 주종관계는 박 사장네가 캠핑장을 떠나고부터 다시 반전된다.) 영화에서는 과외하러 온 사람이 주도하는대로 미술치료 선생을 들이고, 그 미술치료 선생의 비장의 책략(?)대로 절묘하게 운전기사가 짤리고 인맥의 인맥을 거쳐 기택이 운전기사로 들어오고... 그 운전기사는 또 자기가 아는 업체(물론 가짜)와 연결해 가정부인 아내를 소개하고...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전개이다. 후반부에 복잡하게 얽히는 것과 대조될 정도로, 정말 이런 대박이 또 없을 정도의 겹경사를 느낄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은 분들은 초반 전개에서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내가 n수생인데 친구가 과외를 소개시켜주고, 심지어 과외를 갔는데 예쁘고 어린 학생이 촉촉한 눈으로 나한테 손을(...) 잡는 일은 절대 있을 수가 없다. 어디까지나 보고 싶은 걸 보여주는 것일 뿐. 이처럼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가던 전개는 점차 꼬이기 시작한다. 하필이면 이때 전 가정부(문광)가 돌아오고 자신들의 실체를 들키고, 박 사장네한테 들킬 뻔하는 등 아슬아슬하게 흘러가다가 마침 박 사장네가 지금 돌아온다고 하고... 정말 머리 아파오는 긴박한 상황이 연출된다.


 

긴박함에서 드러나는 기택 가족(빈자)의 추악함

 중요한 건 그 긴박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추악함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기택과 문광네는 근본적으로 같은 처지에 놓여있다. 기택도, 문광의 남편도 모두 사업실패로 빚을 지고 자신들의 처지가 나락으로 떨어져 결국 누군가에 기생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서로가 이런 실체를 알기 이전에는 기택의 아내는 너무나도 냉정하게 갑질을 시도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러다 상황이 반전되고, 서로 물어뜯으려고 하고... 결국 누군가가 죽게 된다. 이 부분이 빈자는 항상 옳다.’, ‘정의다.’, ‘착하다.’하는 정형적인 클리셰를 극단적으로 깨버린, 그리고 필터없는 욕설을 통해 사실적으로 드러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부자를 띄워주는 영화?

 영화 속 대사에서도 '나도 이만큼 가졌으면 마음이 착해질 수 있다'라는 식으로 오히려 가진자쪽을 인정해주는 듯한 내용이 나온다. 심지어 저택에 기생하던 '그 남자'박 사장을 리스펙트(respect) 한다. '그 남자'는 지하에 기생하면서 박사장'만' 존경한 게 아니라 여러 세계 유명인사들 사진도 같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는데, 필자가 기억하기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도 있었던걸로 기억한다, 그걸 보면 사업에 실패한 자신과 달리, 성공한 사람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일각에서는 콩고물 하나 안주는 재벌들 찬양하는 하층민을 비꼰 것이라고 하는데, 존경하는 대상이 존경스러울 정도의 업적이 있으면 자기 신분을 떠나서 존경하는 게 맞다. 단지 방공호에 기생하던 그 남자는 너무 처지가 불쌍했을 뿐이지, 그걸 '재벌, 기업가 받들어주는 건 남이 볼 때 웃긴 일이다.'라며 해석하기에는 지나친 확대해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화적 장치 - 하층민의 '냄새'

 갈등을 점화시키는 영화적 장치는 다름아닌 '냄새'. 시청각적인 걸 넘어서 오히려 영화에서 가장 전달하기 힘든 '후각'을 어떻게 영화 전개의 기폭제로 쓸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영화가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하류층 기택과 상류층 박 사장의 근본적인 경계, ''을 만들어내며 마지막에 기택이 피해의식에 박 사장을 찔러버리는 이유도 된다.


(이걸 하층민의 피해의식으로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일단 이 장면에서 박사장의 코를 찡그렸던 건 기택 자신에게서 나는 냄새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씻지 못하던, 반지하보다 더한 곳에서 기생하던 '그 남자'에게서 나던 냄새가 원인이기 때문. 파티용품을 사러 마트에 갔다오던 와중에 박 사장의 아내가 환기시키려고 창문을 여는 장면도 피해의식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정말로 기택에게서 냄새가 났다면 애당초 장보면서 그렇게 가까이 있게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홍수가 난 상황에서 수석이 물에 뜨는 장면처럼 주인공 시점에서 환영을 연출했을 가능성이 크다.)

 

기우의 망상 - 하층민과 상류층의 '', ()계급론

 '냄새'처럼, 기택의 가족(하류층)과 박사장네 가족(상류층)이 애초에 격이 다르며, 특히 하층에서 상층으로 상승하는 게 그야말로 꿈만 같다는 건 기우의 망상으로 표현이 된다. 결말이 조금 심오한데, 살인을 저지르고 도피하기 위해 '그 남자'처럼 기생충이 되어야 하는 입장을 기택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아들인 기우도 어떨결에 자기 아버지인 기택을 기생충으로 만드는 걸 전제로(...) 망상을 한다. 아무리 로또당첨급으로 잘 풀려도 그때까지 기택은 계속 기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차라리 자수하는 게 빨리 가족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어떻게보면 이런 영화적 결론은 "우린 계속 '제도권의 압박(영화에서는 투옥)'을 피해 기생충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듯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 같기도 하다. 기존까지의 '계급론'을 세련되게 표현한 느낌도 받을 수 있겠다.

 

영화적 한계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로서의 기생충은 참 수작이라고 생각하지만, 필자는 소위 좌파적 메시지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기생충’, 그 이름처럼 음침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영화에서 그치는 게 맞다. 현실의 박 사장’, ‘기택은 굳이 엮이는 일 없이 자기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그걸 흥미있게 얶어 풀어낸 판타지가 기생충이다.

 



정치병환자들의 난입

 어쩌면 너무 양극의 계층을 다루다보니 현실에서 정치병환자들의 먹잇감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치도 영화처럼 거짓말을 많이 하다보니 그런 것일까? 진보나 보수, 좌파나 우파 안 가리고 영화 <기생충>하고 엮어서 이번 총선에 선거 구호로 질리도록 작정인가보다. 특히 언더도그마적 성향이 심한 좌파진영인 민주당과 정의당에서 복지정책와 연관시켜 많이 꺼내들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안 좋은 주거환경을 개선시키려는 재개발은 좌파진영이 가장 반대한다(...)

 

외신 - “영화 <기생충>, 조국이 떠오른다.”

 문서위조 부분 때문에 조국과 엮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기택 가족들보다는 오히려 박사장 아내의 이해안될 욕심이 조국을 더 잘 보여주는 것 같다. 가질 거 다 가진 집안이 과외비 조금 아끼겠다고 돈을 빼는 장면을 보고 조민이 생활비 장학금 169천원(액수를 보면 알겠지만 당연히 조민같은 금수저가 아닌 어려운 저소득층 위한 것이다.) 타간 것과 매치가 된다.

 

결론

 정치는 정치고, 현실은 현실이다. 기생충은 그저 영화에서 머무르면 정말 수작이라는 평을 내리고 싶다. 영화 <인타임>처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 던지는 영화는 수두룩하다. 예술성이나 흥미도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스크린 속에서 제 아무리 화려하고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낸다 한들, 현실의 자본주의 사회를 바꾸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지만, ‘박 사장은 박 사장대로, 기택은 기택대로살아가는 것이 이 사회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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